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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한 국밥 한 그릇에 담긴 사랑

rndjr 2010. 2. 2. 14:33

따끈따끈한 국밥 한 그릇에 담긴 사랑
천안역 광장에서 노숙자에게 매일 무료 배식…'오뚜기공동체' 박승일 목사 부부
 

"왔다!", "왔어요!"

승합차가 천안역 광장에 진입하자 한 사람이 소리를 질렀다. 이미 광장 한편에는 120명 남짓한 노숙자들이 줄지어 서 있다. 대부분 거동이 불편해 지팡이를 짚어야만 움직일 수 있는 노인들이다.

밥통과 국통을 열자 뽀얀 김이 모락모락 솟아올랐다. 구수한 밥 냄새와 시큼한 김칫국 냄새가 광장 곳곳으로 퍼졌다. 코를 자극하는 냄새 때문에 줄지어 기다리던 사람들의 표정이 변했다. 아직 배식은 시작도 안 했는데 뒤에 있는 사람들이 앞 사람을 밀며 조금씩 앞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배식을 하기 전에 예배는 필수다. 찬송 한 곡 부르고, 간단하게 말씀을 전한다. 그리고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큰 그릇에 밥을 한가득 꽉 눌러 담고 김칫국을 부어 말아 먹는다. 맛을 느끼며 먹는 것 같지는 않다. 사람들은 주변 사람과는 대화도 없이 호호 불어 대며 밥을 마신다. 먹고 난 사람들의 표정은 여유롭다. 아직 배식을 못 받은 사람들은 밥과 국이 모자랄까 초조해 한다.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 양은 언제나 넉넉하다.

   
 
 

천안역 광장에서  배식을 기다리는 노숙자들

 
 
   
 
 

▲ 큰 그릇에 밥을 한가득 꽉 눌러 담고 김칫국을 부어 말아 먹는다. 먹는 순간만큼은 누구도 부럽지 않다. ⓒ뉴스앤조이 유연석

 
 
충청남도 천안시 쌍용동 '오뚜기공동체' 박승일 목사(제자비전교회·58). 그는 천안의 '밥퍼 목사'다. 그가 천안역 광장에서 노숙자와 쪽방 거주민을 대상으로 무료 급식 봉사를 시작한 것은 2007년 7월부터였다.

   
 
 

▲ 오뚜기공동체 박승일 목사(제자비전교회·58). ⓒ뉴스앤조이 유연석

 
 
박 목사는 용인에서 홀로 사는 노인을 대상으로 도시락 배달 봉사를 하며 작은 교회에서 목회했다. 그러던 중 돈이 없어 집세를 밀려 결국 천안으로 이사했다. 그때 중국으로 직장을 옮기는 한 자매가 박 목사의 통장에 2,000만 원을 입금했다. 박 목사의 어려움을 안 자매는 이 돈으로 박 목사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월세를 전세로 바꿀 수도 있는 거금이었다. 이 돈을 어떻게 써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천안역 광장에서 떨고 있는 노숙자들을 보았다. 노숙자의 눈빛이 잊히지 않았다. 결국 이 돈은 노숙자를 섬기는 데 쓰기로 했다. 아내 신길자 씨(56)도 박 목사의 제안에 적극 찬성했다. 박 목사 부부의 무료 급식 봉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3일만 급식했다. 급식을 매일 제공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2월부터다.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하루 세끼 꼬박 챙겨 먹는데 저 사람들은 급식이 없는 날은 굶는다. 사람이 최소한 하루에 한 끼는 먹어야 하지'라는 생각이요. 그래서 매일 급식하기로 결정했지요."

한 달에 약 3,000그릇이 나간다. 한 끼에 1,000원꼴이니 한 달이면 약 300만 원의 비용이 든다. 지난해 9월까지는 아들 둘이 박 목사에게 가장 큰 후원자였다. 일본에 있는 두 아들이 매달 250만 원을 보냈다. 큰아들은 직장이 일본에 있고, 작은아들은 워킹홀리데이로 일본에 가 일을 했다. 특히 작은아들은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용돈 몇 푼 빼고는 꼬박 아버지에게 보냈다.

하지만 이제 작은아들이 사회복지사를 꿈꾸며 공부에만 매진하게 돼서 가장 큰 후원이 끊겼다. 교회 재정으로 운영하기에도 부족하기는 매한가지다. 박 목사가 섬기는 제자비전교회 교인 수는 목사 부부를 포함해 10명밖에 안 된다. 이 중 4명이 외국인 노동자다. 그나마 노회 안의 두 교회에서 매달 5만 원씩 후원한다. 최근 몇몇 언론에 알려지면서 후원자도 조금 생겼다. 며칠 전에는 익명의 후원자가 쌀 600kg을 보냈다. 박 목사는 "부족할 때마다 채워지는 것을 보면 이 모든 게 하나님 뜻이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참 감사하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박 목사에게 "당신이 무료로 밥을 주니까 저 사람들이 일도 안 하고 먹고 노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그러나 박 목사는 "여기 오는 사람 대부분이 노인들이고 지적장애자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한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배고프다고 구걸하거나 강도가 될 수도 있다. 그나마 하루에 한 끼라도 먹어서 배고프지 않으니까 사람의 모습을 갖추고 산다"고 했다.

   
 
 

▲ 가족 모두가 박 목사의 일을 돕는다. 일본에 있는 아들 둘은 매달 후원금을 보냈고, 아내 신길자 사모는 하루도 쉬지 않고 천안역 광장에 나와 배식했다. 이번에 고등학교 입학하는 딸 주혜 양은 친구들과 함께 찾아와 박 목사를 돕기도 했다. 사진은 왼쪽부터 신길자 사모, 박주혜 양, 박승일 목사. ⓒ뉴스앤조이 유연석

 
 
가끔은 이런 일이 지치지 않느냐는 질문에 박 목사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봉사를 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제게 주신 일을 하는 거예요. 저는 하나님 덕분에 이 사람들을 만났고, 이 사람들 덕분에 소명을 발견했어요. 이 사람들이 저를 일으켜 세워 준 거지요. 이제는 제가 일으켜 줄 겁니다. 오뚝이 밑에는 추가 있어서 넘어지지 않고 항상 일어나잖아요. 제가 이 사람들의 추가 되어 줄 겁니다."

박 목사는 올해부터 한 달에 1만 원씩 후원해 줄 200명을 찾는다. 박 목사는 많은 사람이 나눔의 기쁨을 느끼고, 소외 받는 사람들이 일어설 수 있는 오뚝이 추가 되어 주기를 부탁했다.

후원 계좌 : 농협 473-01-095762 (예금주) 오뚜기공동체
문의 : 010-7301-0675, 박승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