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지켜주신다는 말씀인가? (2)
무엇을 지켜주신다는 말씀인가? (2)
무엇을 지켜주신다는 말씀인가? (2)
이스라엘을 지켜주신다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을 지켜 주시는 차원도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자신들을 위한 하나님을 믿고 있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을 갖고 있지 않다. 이 땅에 보내신 메시아를 인정하지 않으며 믿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들은 예수를 이용하여 장사를 하고 있으며 기독교의 원조라고 착각하고 있다.
그런데 설교시간에 단골 메뉴로 올라오고 있는 예화는 노벨상 수상 받은 자들 중 60%나 되며, 세계 경제권을 유대인들이 쥐고 있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자들이라고 추겨 세우고 있다. 그들이 이 땅에서 받는 축복과 권세와 명예와 인기를 보고 하나님께로부터 축복받았다고 들먹거리지 않았으면 한다.
마태복음 5:29에 “만일 네 오른 눈이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30에 “또한 만일 네 오른 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는 말씀한 바가 있다.
이 말씀을 보고 오해하는 분들이 너무나 많다. 어느 분이 도박 중독증에 빠져 헤어나기 위해 손을 잘라버렸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발로 화투를 잡고 계속 도박을 하는 사례가 있듯이 잘못된 육신의 부분을 잘라버린다고 해서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전혀 아니다. 성경은 그런 내용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앞뒤 문장을 보면 간음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간음이란 의미는 육신적인 남녀의 불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적인 간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변질시키는 것이 바로 간음을 의미하고 있다. 즉 정상적인 부부사이의 성적인 생활이 아닌 부부가 아닌 다른 사람이나 짐승과 관계를 갖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비정상적인 신앙생활이 간음이며 실족하는 것이 된다. 이런 내용을 관찰하지 못하고 문자적인 자구적인 해석을 성경을 풀어감에 따라 오해를 연출하는 것이다. 마 11:6에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실족하지 말아야 한다.
즉 예수님 때문에 실족 당하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목사 때문에 장로나 권사 때문에 실족 당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누구 때문에 실족 당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믿는 자들 때문에 일반인들까지 피해를 보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실족당하고 있지 않은지 잘 살펴보고 실족당하고 있는 이들이 있으면 즉시 가서 일으켜 줘야 한다.
유대인들이 맛소라 사본을 제작할 때 하나님께서 주신 문자들을 자기들 마음대로 삭제하거나 삽입하는 중대한 범죄를 하여 성경의 오역을 남기게 한 장본인들이다. 이런 틈새로 하나님의 복음은 지금 우리들에게 다가온 것이다. 이것이 기적으로 여겨야 하며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야 하는 이유 중에 하나이다.
자음 30만자를 삽입 모음 100만자를 삽입했으며 무수한 내용들을 삭제한 사실이 드러나 있다. 그런 와중에도 성경 번역이 많은 오류 속에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로 인도는 했지만 올바른 신앙체계를 만들어 주지 못하는 상황을 계속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따라서 올바른 성경은 반드시 나와야 하는 것은 신학자뿐만 아니라 일반 평신도까지 간절히 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시 121편에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는 분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5~6에 “오른 쪽에서 그늘이 되시고” 라고 되어 있는데 “그 분의 오른 손이 우리에게 그늘이 되어 주시고”라는 표현이 더욱 정확하다. 하나님의 오른 손이 얼마한지 그 어느 누구도 측량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 평생을 두고 해도 측량할 수 없을 것이다.
낮의 해가 우리를 상치 못하게 하시고 밤의 달이 우리를 해치 못하게 하신다는 것은 우리 인생을 그 어느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게 하신다는 말씀인가? 그렇다면 외국 선교하러 갔다가 원주민에게 죽거나 풍토병에 의해 주었다면 하나님께서 그늘이 되어주지 않아서인가? 아니면 그의 믿음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인가? 애매모호한 상황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생명으로 들어 와 생명의 본질이 계속 성장발전하기 위해서 그리고 더 이상 말씀의 생명이 변질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지켜주심의 역사는 계속 이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육체가 썩어짐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건강에 관심이 없거나 인생에 관심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님과 한 몸이 된 우리에게 관심이 있는 것은 하나님의 온전하신 참 사랑을 깨닫고 영생의 복락을 누리며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가는 것을 지켜주시는 것이다. 주님과 함께 살아가면서 말씀을 지키며 이루어나가는 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환란이다. 그런데 세상에서 어려운 난관과 역경이 환란으로 착각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성경에서 말하는 환란은 대지진이나 태풍이나 전쟁, 기근, 대형사고 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인하여 실족하게 만드는 종교지도자들의 조작과 계략에 휘말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실족하게 하는 존재들이다. 그들 자신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남들도 못 들어가게 하는 위험한 인물들이다.
성경에서 의미하는 환란을 지금 현실에서 나타나는 환란과 동일 시 함에 따라 많은 부작용을 일으켜 왔다. 물론 일종에 경고의 차원에서 필요한 부분도 있지만 끼어 맞추기 식의 사건을 동일 시 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환난은 말씀을 이루기 과정에 일어날 수 있는 외적인 현상도 있지만 내면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 속에서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야고보서 1장 27절에 환난 중에 고아와 과부를 돌봐야 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자기도 코가 석자인데 남을 돌본다는 것은 나 혼자 구원받는 차원이 결코 아님을 의미한다. 현재 기독교는 너무나 개인주의 구원관을 내세워 크나큰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환난은 무엇이며 고아와 과부의 환난은 무엇인가? 육신의 아버지가 없는 상태, 남편과 신랑이 없는 상태에서 다른 곳에 가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찾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고아와 과부들의 환난인 것이다.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켜준다는 보장아래에서도 나를 지켜 나가는 것도 어려운데 내가 스스로 나를 지켜 나간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야고보서 1:27에 나오는 말씀은 환난 중에 있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일이라면 지금 현재 아이티 현장에 가서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는 의미가 아니다.
내 안에 존재하고 있어야 할 아버지 하나님이 계셔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존재가 바로 고아인 것이다.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남편이신 하나님(사 54:5, 62:4, 5, 렘 3:14, 호 2:19, 20, 말 2:11)을 엉뚱한 곳에 가서 찾고 있다면 분명한 과부로 살아가는 것이다.
교회 밖에도 고아와 과부가 많지만 교회 안에 더 더욱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런 자들을 돌보는 것이 시 121편에 나오는 환난으로부터 면제되는 것은 더 더욱 아닌 것을 잘 깨달아 할 것이다. 내 안에 아버지가 계심을 신랑과 남편이 함께 하심을 믿는 것이 환난을 면하는 것이다.
따라서 환난은 내 안에 하나님과 예수님 계심을 모르는 것이 무서운 환난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런 고아와 과부들에게 말씀의 원형과 뿌리를 찾아주는 것이 바로 그들을 돌보는 것이다. 앞으로 할 일이 많은데 인간에게 필요한 생명의 원형과 뿌리를 찾아야 한다. 물론 건강의 원형과 뿌리를 서로 연관되어 있지만 구분해서 시도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의 원형과 뿌리를 찾는 일에도 적극적이어야 한다. 서구교회의 영향을 받은 한국교회가 허구 속에 있던 기독교의 본래 갖고 있던 본질을 찾는 작업을 감당하여 몰락하기 직전에 있는 한국교회가 바르게 세워져야 할 것이다. 전 세계가 기독교의 영향으로 구축해 왔던 수많은 사상들을 올바르게 세워져야 할 것이다.
사상의 원형과 뿌리를 찾는 작업을 사람이 하게 되지만 어쩌면 하나님께서 지켜주지 않는다면 이 사역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심층 분석을 하여 원인규명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확실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문제제기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나의 개인적인 신앙과 삶을 지켜주시는 일에도 우리가 감사하고 영광을 돌려야 하겠지만 전 세계 기독교가 하나님으로부터 온전한 지켜짐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봉착되어 있음을 직시하고 부름을 받고 일어나야 할 것이다.
여기에 동조하고 적극 참여하는 분들이 함께 하기로 약속하고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진정 하나님의 지켜짐을 받고 싶은 분들 이메일로 연락을 부탁드리며 함께 원형과 뿌리를 찾는 일에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전히 지켜주시는 것은 창세전에 우리가 받아야 할 것을 당연하게 되돌려 받아서 누려야 하는 삶이 계속 이어져야 한다. 원형과 뿌리를 찾아 올바른 세계관을 확립해야 하며 사상체계를 바르게 전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원래의 것을 찾아나가는 우리를 지켜주실 것이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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