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되신 예수의 영원한 파트너로 살아가기를
며칠 전인 12일, 제 10회 광저우 장애인 아시안게임이 중국 광저우의 아오티 주 경기장에서 개막식을 열고 ‘우리는 환호하고, 함께하고, 승리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열전에 들어갔습니다. 장애인 아시안게임은 9회까지는 아시아-태평양 장애인경기대회라는 이름으로 치러지다 올해 비장애인 아시안게임과 처음으로 통합되어 선의의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난달인 11월,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이라는 16일 간의 아시안 스포츠 축제가 있었습니다. 내가 한국을 방문 중 아시안 게임이 있었는데 방송사마다 취재 열기로 정신없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며칠 전에 있었던 아시안게임에서 보여 주었던 열기는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하루 종일 선수들의 시합 장면을 보여 주던 방송사들이 지금은 뉴스 시간에 장애인 선수들의 메달 소식을 보여 주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언론들이 메달을 딴 선수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면서 환호하며 열광했던 국민들의 모습들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지금은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가 버렸고 또 북한의 연평도 폭격으로 온 시선이 분단된 조국의 아픔에 쏠려 있습니다.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은 금메달 76개, 은메달 65개, 동메달 91개를 획득해 4회 연속 종합 2위를 기록하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메달을 딴 선수들, 특히 금메달을 딴 선수들은 언론에 집중적으로 조명을 받으며 조국 대한민국에 감사하다는 말들을 했고 자신들이 최선을 다했더니 이러한 좋은 결과를 얻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메달을 딴 선수들 뿐 아니라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44개 종목에 참여한 1013명 모든 선수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장애인 아시안게임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장애인 선수들도 누가 알아주지 않고 국민들이 열광하며 텔레비전 앞에 모여 있지 않아도 마치 그것이 자신과의 싸움이라 생각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시안 게임에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눈에 보이지 않게 자기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선수들이 있습니다. 이름하여 ‘아시안게임 파트너 선수’들입니다. 아시안게임 파트너 선수란 아시안게임에 나서는 선수들을 돕는 같은 종목의 또 다른 선수들입니다. 이 선수들은 아시안 게임에 참가한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기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수고한 선수들입니다.
선수들이 혼자의 힘으로 메달을 따는 것이 아닙니다. 메달을 딸 수 있도록 기술을 도와주는 코치들이 있고, 연습에만 신경을 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족과 함께 주변에 많은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선수들에게 있어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선수의 연습 파트너입니다.
혼자 하는 기록경기를 제외한 거의 모든 종목들은 상대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그 기술을 연마할 수 있는 연습 상대 선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 연습 상대 선수를 아무나 해서도 안 됩니다. 자신과 비슷한 실력을 가진 상대방이어야 선수가 훈련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유도가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6개, 은메달 3개 동메달 5개를 따내면서 한국이 종합 2위를 하는데 큰 기여를 했는데 이 유도가 혼자의 힘이나 기술로 메달을 딴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 선수들을 상대해 주었던 연습 파트너 선수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기록경기도 그렇다고 합니다. 아무리 혼자 잘한다고 해서 기록이 쑥쑥 향상되는 것이 아닙니다. 옆에서 같이 훈련해 주며 기록을 향상시켜줄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는 파트너 선수가 필요합니다. '마린보이' 박태환선수가 한국갤럽이 조사한 '2010년을 빛낸 스포츠 선수' 설문에서 1위에 올랐는데 그 이유는 아시안게임에서 자유형 100m와 200m, 400m에서 모두 금메달을 거머쥐며 아시안게임 2회 연속 3관왕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박태환선수에게도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박태환선수의 훈련을 도와 줄 파트너 선수라고 합니다. 함께 수영하며 자신을 자극해 주고 도와 줄 선수가 꼭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모든 종목들은 자신과의 싸움인데 그 자신과의 싸움에서 자신을 도와주고 지탱해 줄 파트너 선수의 역할이 상당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회에 나서는 선수들은 누구를 파트너로 해야 할지에 대해 제일 먼저 신경을 쓴다고 합니다. 이러한 파트너 선수들은 자신은 비록 게임에 나서지는 못하지만 게임에 나가는 선수들이 메달을 딸 수 있도록 훈련을 돕습니다. 실력으로 말한다 해도 정식 선수들과 비교해서 전혀 뒤지지 않는 최강의 실력을 가진 실력파들입니다.
이 파트너 선수들은 정식 선수들과 똑같이 태릉선수촌에서 기거하며 똑같은 훈련을 하면서 오직 게임에 참가하는 주인공 선수가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합니다. 그리고 선수들이 격전지 대회가 열리는 곳으로 가면 그제야 자신들은 선수촌에서 퇴소합니다. 그리고 텔레비전을 통하여 자신이 상대해 주었던 선수들을 봅니다. 그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면 뒤에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지만 메달을 따지 못하면 마치 자신이 메달을 따지 못한 것 같이 슬픔과 아쉬움의 눈물을 흘립니다.
이러한 사람은 스포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에도 있습니다. 오직 주인공 되신 예수를 위하여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평생을 예수의 파트너가 되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오직 예수만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산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베냐민의 지파요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요 로마 시민권자요 또한 학식이 탁월한 스승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학문적으로나 가문 적으로나 명예 적으로나 자신이 내세우는 모든 것들을 예수를 위해서는 다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한 사람입니다. 그는 심지어 살아도 예수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예수를 위하여 죽는다고 고백한 정말 예수의 파트너였습니다.
믿는 성도인 우리들도 예수의 파트너가 되어야 합니다. 오직 예수의 이름을 드높이기 위하여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자신을 희생하고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예수의 몸 된 교회에서도 오직 예수만을 위하여 섬기고 봉사해야 합니다. 예수를 위하여 나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며 예수를 쫓아야 합니다. 나의 이름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의 이름만을 드높이기 위하여 겸손히 예수의 파트너로 나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아기 예수의 오심을 기뻐하며 또 아기 예수를 기다리는 이 대림절 절기에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눈에 보이지 않게 묵묵히 나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우리의 주인공 되신 예수의 영원한 파트너로 살아가기를 소망해 봅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3:8-9)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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