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덕이 죽 끓는 사람
변덕이 죽 끓는 사람
안정적인 사람이 있는가하면 불안정한 사람이 있다. 안정적인 사람은 내면이 마치 고요한 호수와 같아 상대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하나 불안정한 사람은 마치 끓는 물 같아 언제 변할지 모른다. 금방 좋았다, 금방 싸늘한 분위기이다. 시쳇말로 변덕이 죽 끓듯 한다.
교인 중에 K권사님이 있다. 사람을 참 편안하게 해주는 권사님이시다. 내가 교회에 부임한지 9년째이니까, 8년 동안 겪어보았지만 단 한 번도 변덕을 부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어쩌면 그렇게 변함이 없이 한결같은지. 아내는 나에 비해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좋은 편이라 어지간하면 좋은 관계로 지내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그 권사님을 편하게 생각하는 것을 보면 내가 잘못 본 것은 아닌 것 같다. 하기야 사람이 느끼는 것은 엇비슷하니까.
안정적인 사람과 불안정한 사람 간의 차이는 내가 생각하기에는 관대하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달려있는 것 같다. 안정적인 사람은 관대하다. 마음에 조금 들지 않아도 그 모습 그대로 받아준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으로 하여금 편안함을 준다. 그러나 불안정한 사람은 조금만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거나 뜻대로 되지 않으면 안색이 달라진다. 토라져 말을 하지 않거나 성질을 부린다. 상대방에게 불안감을 준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관용하라고 한 것일 게다.
관대한 마음과 관대하지 못한 마음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성향이 아니다. 양육자로부터 어떤 경험을 했느냐에 달려있다.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두 가지를 들자면 한 가지는 부모로부터 어떤 방식으로 양육을 받았는지의 부모 양육방식이고 또 한 가지는 부모의 의사소통방식이 어떠했는가이다.
많은 학자들이 부모의 양육방식을 두 축으로 나누어 분류한다. 한 축은 애정적이냐, 적대적이냐 또 한 축은 자율적이냐, 통제적이냐이다. 부모로부터 애정적이고 자율적인 돌봄을 받고 자란 자녀는 마음이 관대해져 안정적인 사람이 되나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한 적대적인 돌봄을 받고 또한 지나치게 통제를 받고 자란 자녀는 마음의 그릇이 냄비와 같이 좁아져 작은 일에도 쉽게 요동치는 불안정한 사람이 된다.
의사소통 방식 또한 안정적인 마음과 불안정적인 마음에 크게 영향을 끼친다. 부모로부터 수용을 받지 못한 채 자주 비난이나 비판 혹은 지나친 간섭과 지적을 받고 자란 사람은 별 말 아닌 말에도 민감하게 반응을 한다. 자라면서 수용 받지 못함으로 인해 생긴 아물지 않은 상처가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로부터 실수에 대한 용납, 실패에 대한 용납, 존재 자체에 대한 수용, 감정에 대한 수용 특히 부정적인 감정에 대한 수용까지도 받고 자란 사람은 마음이 깊고 넓은 자가 되어 자신도 자신의 부모처럼 다른 사람의 실수나, 감정 그리고 자신과 다른 방식을 관대한 마음으로 수용해줄 수 있게 된다.
교회란 험난한 이 세상에서 그간 사랑받지 못하고 수용 받지 못함으로 인해 거칠어진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과 수용을 나를 통해서 경험하게 하는 곳이다. 그럼으로써 예수님을 닮은 관대하고 덕스러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곳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새사람으로 만들어가는 하나님의 가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이미 형성된 성품 등을 다시 새롭게 한다는 것이. 바울이 말했듯 자녀를 기르는 마음으로 참고, 견디며 때로는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