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 박고은
나는 열일곱 소녀 같은 여자
실비에도 촉촉이 젖어버리는
내 마음은 풀잎 하나
떨구는 잎새에게 입맞춤하고
스치는 바람에 눈물 글썽이는
솔 향기 오가는 산 속
한 마리 꽃사슴 같은 여자
깊은 물속 조약돌인 양
견고한 영혼을 지녔으되
초롱초롱한 샛별에 반해
진리의 가슴을 불태우며
검푸른 저녁 바다를 노을로
붉게 물들일 줄 아는
속이 따뜻한 정 깊은 여자
저 추운 강변
향 피우는 수선화처럼
지독한 비극의 남자를
이 순간도 그리워하는
나는 정녕 늦가을 같은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