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시

봄바람

rndjr 2010. 3. 26. 21:21


          봄바람 / 유상옥 어머니의 부엌에는 가마솥 하나 있다 새벽에 젖은 장작 피울 때는 불쏘시개에 불을 댕기고 가슴에 오래 담아두었던 바람을 불어낸다 어린 것들 떨어진 옷을 보면 고봉 보리밥 솟아오르듯 이는 바람이다 살속에 얼음이 얼 때 하늘 아래 감출 곳 없는 바람의 꼬리가 소매에 걸려 콧소리가 난다 겨울이면 깊어지는 소리의 뿌리는 문풍지를 거처 속까지 까만 아궁이에서 한 줌 연기로 울컥거린다 연기 속에서 길을 더듬는다 눈시울 내리고 손사래치며 어둑어둑 외길을 잡는다 돌아갈 수 없는 바람의 길이다 아이들은 메아리 높은 산에 살고 바람은 골짜기에 있다 아득한 틈새로 꽃바람 살아나 젖은 날을 태우고 무명 적삼 따스해지면 얼어 터진 손가락에서 싹이 난다 파릇파릇 솥뚜껑에 김이 솟을 즈음 삼십 리 등굣길 깨우러 개나리 부르면 바람 눈부신 뒷산에 진달래 눈을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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