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화 그리기(山水畵法)
고대(古代)의 회화(繪畵)는 인물화가 대부분이었으나 중국의 6조(六朝)이후부터는 자연(自然)에 대한 자각(自覺)으로 산수화가 출현하여 당대(糖代)이후부터 산수화가 주종을 이루었다.
산수화란 붓으로써 수묵(水墨) 혹은 물감(色彩)을 사용하여 자연(自然: 山,水,石,等)을 화지(畵紙,繪絹)에 먹물과 물감을 사용하여 개성에 따라 형상화(形象化)하여 표현하는 것이다.
산수화(山水畵)는 자연을 소재로 하기 때문에 나무, 돌, 물, 구름과 하늘이 서로 조화(調和)롭게 형성되는 것의 원리를 파악하여 그려야 한다. 작가가 자연풍경(自然風景)을 보고 있을 때, 보이는 경물(景物)은 사실적인 실경(實境)이고 이 실경(實境)속에 보이는 물상(物象)을 작가의 마음속에서 조화(調化)를 일으켜 생각해내 표현한 그림을 의경(意境)이라 한다.
「의(意)란 불교의 6근(六根 : 眼,耳,鼻,舌,身,意)중의 하나로서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다른 것은「의(意)」의 작용이므로 작가의 개성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같은 경물(景物)을 보고 각기 다른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며, 개성적인 것이다.
마음이 어두우면 보이는 물상(物象)도 어둡게 보이는 것이며 밝고 맑은 마음으로 보는 세상의 경물(景物)은 밝게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당말(唐末)의 형호(荊浩)는 「산수를 그릴 때는 먼저 뜻(畵意)이 일어나고 붓(筆)은 그뜻에 따른다」고 하였다.
청대(淸代)의 운수평( 壽平)은 「회화(繪畵)에 있어서의 의(意)란 사람마다 볼수도 있고 또 사람마다 볼수 없기도 하다」(意者人人能見之 人人不能見之)고 하였는데 즉 사람마다 볼 수 없는 것은 내적(內的)인 의(意), 즉 내심(內心)의 의(意)를 말한 것으로 성공적인 산수화(山水畵)란 이 내외(內外)의 의경(意境)이 합일되어 표현된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모든 회화(繪畵)는 충실한 관찰과 체험, 그리고 많은 실습에 의하여 완전하게 표현했을 때 가능한 것이지 내심(內心)에서 우러나는 감정의 의경(意境)만 가지고는 훌륭한 그림을 그릴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고인(古人)은 「만권(萬卷)의 책을 읽고 만리(萬里)를 여행(旅行)한 뒤에라야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한 것은 작가로서 갖추어야 할 내적(內的)인 의(意:지성·知性,학문·學問)와 외적(外的)인 의(意:자연의 관찰·觀察과 사생,寫生)의 합일(合一)을 뜻한 것으로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꾸준한 노력과 습작, 그리고 연구와 실험이 있어야 한다.
동양화의 산수화는 그 정신적 요소가 노·장자(老·莊子)의 자연주의(自然主義)사상과 현학(玄學)의 정신사상(精神思想)이다. 현학(玄學)이란 장자(莊子)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학파(學派)의 이름이다.
장자의 예술정신(藝術精神)은 오직 자연을 배경으로 얻어진것이므로 인간이 자연속에 숨어 살며 자연과 융합하여 생겨난 은일정신(隱逸精神)이다.
위진시대(魏晋時代)에 발생된 산수화는 서구(西歐)보다 약 1,300∼1,400년이나 앞선 것이다. 위진시대의 사상적 배경으로 발생한 산수화는 남북조(南北朝)와 수(隨)·당(唐)을 지나면서 인물화(人物畵)보다 많이 그려지면서 주류(主流)를 이루기 시작하다가, 당말(唐末)에 이르러서는 오도현(吳道玄·吳道子)과 왕유(王維)에 의하여 수묵산수화(水墨山水畵)로 더욱 발전하여 왔다.
산수화론(山水畵論)을 최초로 제기한 진대(晋代)의 고개지(顧愷之)는 한폭의 산수화로 대자연의 묘미를 느낄 수 있으려면 산천(山川)의 미(美)를 많이 체험하고 체득(體得)하여 실감있게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그의 중심적 화론(畵論)은 「전신사조(傳神寫照)」와 「천상묘득(遷想妙得)」이다. 여기서 「신(神)」은 경물(景物)의 영감(靈感)을 감지하는 작가의 정신(精神)을 말하고 「사조(寫照)」란 대조해서 그린다는 뜻이다. 「천상(遷想)」이란 작가가 사물(事物)에서 얻어진 영감(靈感)을 표현하여 그리는 것 즉「감정이입(感情移入)」과 같은 것이며「묘득(妙得)」이란 묘미를 얻는다는 뜻이다.
진말(晋末)의 종병(宗炳)은 화가로서 화론가(畵論家)였는데 그의 산수화론은 장자(莊子)의 예술정신과 많이 상통하였다.
「산천(山川)」에는 물질이 있고 물질에는 제각기 다른 의취(意趣)가 있는데 그것이 곧 눈에 보이지 않는 영(靈)이다. 산수화란 형태(形態)의 질(質)을 찾는 것이고 질(質)을 찾는 것은 화도(畵道)의 자질(資質)을 기르는 것」이라고 하였다.
산천(山川)의 질(質)과 형(形)에서 의취(意趣)와 영(靈)을 볼 수 있고 또 그로 말미암아 유한(有恨)이 무한(無限)과 서로 상통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작가의 화도(畵道)인 것이다.
당말(唐末)의 이사훈(李思訓)은 광물질 색채와 금색(金色)을 사용하여 장식적인 산수화를 그렸으며 당(唐) 종실(宗室)의 자격으로 팽국공(彭國公)이라는 고관직을 지낸 화가였으며, 당시 천하의 시성(詩聖)이었던 이태백(李太白)도 흠모하였다는 시인이요 화가였던 노홍(盧鴻)은 은일(隱逸)선비로서 현종(玄宗)이 총애하여 초당(草堂)과 현판을 하사하였다니 그의 명성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이 시대에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오도현(吳道玄)은 화공으로서 현종의 명을 받아 가릉강(嘉陵江) 300리의 대산수화를 대동전(大同殿)벽화로 그려 중국의 회화사상(繪畵史上)화성(畵聖)으로 기록되었으며 수묵화(水墨畵)의 시조(始祖)이기도 하다.
왕유(王維·摩詰)는 처음 이사훈에게서 청록(靑綠), 금벽산수(金碧山水)의 그림을 배웠고, 노홍의 도가사상(道家思想)의 영향을 받았으며 다시 오도자의 수묵화법을 배움으로써 먹하나만 사용하여 일체의 사물을 표현할 수 있는 수묵화가가 되었던 것이다.
형호(荊浩)는 당말(唐末) 5대(五代·梁)에 걸쳐 활동한 화가로서 산수화에는 필의(筆意)가 가장 먼저하고 주장하였으며 「화산수부 (畵山水賦)」「필법기(筆法記)」등을 저술하였다.
북송(北宋)의 곽희(郭熙)는 형호의 화론을 더 발전시켜 삼원론법(三遠論法)을 저술하여 동양화의 이론적 기초를 세워놓았다.
삼원법(三遠法)이란 산 아래로부터 산 위를 쳐다본 것을 고원(高遠)이라 하고 고원의 색은 청명(淸明)해야 하며, 산의 앞면으로부터 산의 뒷면을 넘겨다보는 것을 심원(深遠)이라하고 가까운 산으로부터 먼 산을 바라본 것을 평원(平遠)이라 하며 평원의 색은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조선후기(朝鮮後期)의 실경산수화가(實景山水畵家)였던 겸제·정선(謙 ·鄭敾:1671∼1759)은 「한국산수화」의 한 정형을 이룩했다는 관점에서 「한국적 화풍」의 창시자이자 조선시대 최대의 화가이다.
겸제는 심사정(沈師正」玄 )에게 사사(師事)하였으며 도화서(圖畵署) 화원(畵員)으로 화명(畵名)이 높았고 역리(易理)에도 밝았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조(朝鮮朝)의 도화천기(圖畵賤技)사상은 겸제의 나이 80세에 승직(陞職)하게 되었을 때 간관(諫官)이 「정선(鄭敾)은 천기(賤技·그림)로써 이름을 얻고 잡로(雜路 : 筮占)로써 출세했으니 종전의 경력만도 과하다고 할 것인데(하랴)」라고 승직을 반대하는 간언(諫言)을 올림으로써 영조(英祖)가 이에 따랐다고 한다. 이러한 도화천기사상(圖畵賤技思想)은 한국적인 회화의 발전을 가로막아 버렸을 뿐만 아니라 한국적인 화론(畵論)도 발생하지 못하게 하였다.
겸제가 평생을 한국의 산천을 두루 답사하며 그렸던 실경 산수화는 다시 평가되고 있으나 우리는 겸제의 실험과 창작 정신을 이어 받아 한국화의 화론과 화법을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산수화(山水畵)의 구도법(構圖法)
산수화의 구도는 위의 도표와 같다.
이상의 구도는 산수화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동양화 구도의 표준이다.
산수화를 그리는데는 화가가 주산(主山)을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에 따라 구도의 방향이 결정된다. 주산은 기복(起伏)이 감싸안는 듯 해야 하는데 이것을 「주산 환포법(主山 環抱法)」이라 하고 객산(客山)은 늘어서서 읍(揖)하는 듯이 그리는데 이것을 「객 주산 조읍법(客 主山 朝揖法)」이라고 한다.
또한 객산(客山)이 주산(主山)을 등지고 있는 것을 꺼리는데 이것은 배반(背反)을 뜻하기 때문이다.
나무가 설 자리에 서야하고 인가(人家)를 그리려면 인가가 있을 곳에 그리는 것이 중요하다.
자연과 합일하는 작품을 그리기 위해서는 작가가 많은 사생과 습작을 통하여 연구하는 방법밖에 없는 것이다.
고법(古法)을 익히고 고인의 작품을 임사하는 것은 경험의 축적(蓄積)이라는 의미이며 새로운 창작과 실험을 위한 준비과정일 때 바람직한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어떤 법식에 얽매어 그 법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참다운 작가라 할 수 없는 것이다.
많은 법식을 익혀서 그 법식을 다 버렸을 때 자기만의 법식이 탄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무그리기
나무를 그리는 법에는 줄기와 가지를 그리는 법과 나나무의 잎을 그리는 법이 있다. 줄기와 가지를 그리는데는 기본 원칙으로가지를 사방으로 뻗게 그려야 한다. 이것을 기수사기법(起手四技法)이라고 한다.
가지를 네 개만 그린다는 뜻이 아니라 사방으로 뻗는다는 뜻이다.
줄기를 먼저 그리고 가지를 그리는데 나무의 가지는 햇볕을 많이 받는 쪽으로 가지를 많이 뻗으며, 그 가지가 더 길다.
가지를 그린 다음에 잎을 그린다.
가지만을 그려 놓은 것은 겨울나무가 된다.
그리기 시작하는 것은 첫 붓이 가장 어렵다.
나무의 명암과 앞으로 나온 가지와 뒤로, 좌측과 우측으로 뻗어나간 가지와 좌우의 수목이 서로 바라보아 따로따로 되지 않아야 하며 굽은 곳과 곧은 곳, 가지가 성긴 곳과 빽빽한 곳을 고심하여 그려야 한다.
나무를 그리는데는 나무의 가지를 잘 파악하여 사기(四技法)에 숙다랗여야 한다.
(四技法) : 갈라진다는 뜻. 여기에서는 나뭇가지의 사방으로 뻗음을 뜻함.)
나무의 줄기를 그리는 방법
(1) 무테법 (몰골법:沒骨法)으로 그리는 방법
(2) 테법 (구법:句法)으로 그리는 방법
가지를 그리는 법
(1) 사슴뿔가지법(녹각법·鹿角法) : 사슴의 뿔같은 가지로 양을 그리는 방법으로 가을나무를 그리는데 적합하며 다른 나무를 섞지 않는 것이 좋다. 초 봄에 싹트는 모양을 그리려면, 가지 위의 여기저기에 연한 녹색을 찍으면 좋다. 가을의 나무를 그리려면 주(朱)와 대자(岱 )를 찍어서 잎을 표현한다.
(2) 게발가지법(해조법·蟹爪法) : 게의 발톱모양의 짧은 호선(弧線)으로나무의 잔가지를 그리는 방법이다. 날카롭고 뾰족한 운필이 필요하다. 물기가 적은 붓으로 그려야 한다.
3) 불꽃가지법(화염법·火焰法) : 불기가 타오르는 모양으로 그리는 방법이다. 운필은 유연하게 해야 한다.
(4) 마른버른가지법(고류법·枯柳法) : 버드나무의가지를 그리는 법으로 게발가지법(해조법)의 호선(弧線)을 길게 삐친 것이다.
(5) 못대가리가지법(정두법·釘頭法) : 정두법은 나무의 잔가지를 못과 같이 직선으로그리는 방법이다. 붓 끝을 약간 눌러 못대가리처럼 하면서 선을 삐치는 방법이다.
(6) 긴팔간지법(장비지): 노송이나 삼나무의 가지를 그리는 법으로 팔을 길게 벌린 것처럼 그리는 법이다.
두 그루의나무를 그리는 법
두 그루의 나무를 그리는 전통적인 방법은 두 종류가 있는데 부로(負老)의 휴유(携幼)법이다.
작은 나무를 근경으로 그리고 큰 나무를 뒤로 그리는 것으로 젊은 사람이 노인을 업고있는 것으로 비유하여 부로(負老)라 한다.
큰 나무를 근경으로 그리고 작은 나무를 뒤로 그리는 것은 어른이 어린아이를 데리고 있는 것으로 비유하여 휴유(携幼)라 한다.
늙은 나무는 의젓해서 정이 있어야 하고, 어린 나무는 미끈하게 그려서 멋이 있도록 해야 한다.사람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듯해야 한다.
여러 그루의 나무를 그리는 법
전통적인 방법으로 다섯 그루를 그리는 법을 들수가 있는데 다섯 그루를 그림으로써 숙달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각종의 나무를 관찰해서 여러 가지 형태를 능숙하게 그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근(露根) 그리는 법
노근(露根)이란 겉으로드러나 보이는 뿌리다. 땅이 기름지고두터운 곳에서 자란 나무는 대부분 뿌리가 땅속에 묻혀 있으나 땅이 경사지거나 거칠고 바위와 돌이 많은 땅의 나무는 빗물에 씻겨서 뿌리가 드러나 보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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