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사장을 하고 싶다면 알아 두어야 할 몇 가지 사실들
어떤 자칭 유명 창업스쿨 강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물론 그는 사업 경험이 그다지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나의 주특기가 주로 기획과 자금 쪽이라고 밝힌 바 있었는데 그는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이 기획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느냐며, 자고로 기획이란, 나아가 사업이란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사업에 관하여 일장 연설을 했다. 덕분에 나는 유명 창업 강사의 강의를 무료로 듣게 되었다.
그 무료 강좌의 내용을 요약해 보면 대충 다음과 같았다.
1. 기획 작업에서 가장 필요한 미덕은 치밀함이다.
2. 영업 기술 중 가장 뛰어난 능력은 남다른 끈기로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능력이다.
3. 어떤 사업에서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해당 분야에서 최고의 지식과 기술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4. 과거 벤쳐 거품 시절의 주식 투자는 마구잡이식의 묻지마 투자로서 다들 미쳐 있었다.
얼핏 들어보면 다 맞는 말인 것처럼 들릴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 창업 스쿨의 수준은 대충 그 정도다. 강사들은 대개가 사업에 관한 아마추어들이다. 스스로 사업해서 크게 번 것도 없는 사람들 또는 아예 기업 경영의 경험 한번 없는 교수들이 외국 원서를 읽고 번역해서 강의를 하는 정도이다. 사실 하버드 경영대라 하더라도 사업(기업 경영)에 대해 무지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위 네가지 사항들을 하나하나 짚어본다.
첫째, 기획의 핵심 개념에 대하여.
우리가 사업을 한다고 하면 우리는 오너로서 사업을 하는 것이지 직원으로서 하는 것이 아니다. 오너가 하는 기획은 직원들이 하는 기획과는 전혀 다르다. 기획은 크게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보물이 묻혀 있는 장소를 알아내는 작업이고 다른 하나는 그 보물을 채굴 인양하는 작업이다.
대부분의 사업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기획을 후자의 의미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이때 기업의 규모가 크건 작건 그건 문제되지 않는다. 삼성의 기획실이건 정부 기획실이건 마찬가지다. 이런 경우 기획은 치밀성이 그 생명이 된다.
오너 사업가들에게 있어서 기획은 거의 전적으로 보물이 매장되어 있는 장소를 발견하는 작업에 지나지 않는다. 유전이 어디 있나 바다 밑바닥을 여기저기 찔러보는 일이 그가 할 일이다. 이러자면 방법이란 방법은 모두 동원해 보아야 한다. 유명한 점쟁이나 풍수가들을 찾아보는 것도 유력한 한 가지 방법이 된다. 이런 류의 작업에 있어서는 치밀한 이성이 아니라 돈 냄새를 맡을 줄 아는 예민한 코가 필요하다. 그리하여 일단 돈 냄새를 맡고 나면 이제 오너로서의 기획은 끝나 버린다. 보물을 인양하는 일은 아래 직원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그 직원들 중 평소 믿음이 가는 놈한테,
“야! 이 일은 앞으로 네가 맡아서 해.”
사장으로서 해야 할 마지막 기획일이란 고작해야 그 정도다.
대부분의 사장들이 건들건들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도대체 치밀하지가 않다. 하지만 치밀한 사장 치고 성공하는 사람들을 나는 별로 보지 못했다. 치밀성으로 치자면 변호사나 회계사 따라갈 사람이 없을 것이다. 내 주변 친구들은 대개가 변호사인데 그들 중 사업에 성공한 녀석은 단 한 놈도 없다. 대신 다들 한 보따리씩 빚을 지고 있다.
또한 치밀성은 언제나 풍부한 자금을 전제로 한다. 돈만 많고 시간만 충분하다면 나도 얼마든지 치밀할 수 있다. 하지만 사업은 즉각즉각 판단해야 하는 일의 연속이다. 빙산에 충돌한 타이타닉 갑판 위에서 언제 어느 방향으로 침몰할 것인지, 그리고 침몰할 때까지의 여유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가지고 무한정 시간을 들여서 연구 검토하는 것이 바로 직원들의 기획이란 것이다. 과연 치밀하긴 하다. 그들은 배가 언제 침몰하던 말던 10시간 20시간을 들여서라도 그 여유시간을 확인하는 일에만 정신이 팔려있다.
오너 특히 기업을 창업하고 있는 오너의 입장은 타이타닉의 선장과도 같다. 대부분의 사장들이 치밀하지 못하고 껄렁껄렁해 보이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어차피 치밀성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치밀하다가는 오히려 망한다. 치밀함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치밀함을 초월하는 그 무엇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치밀성은 능력이 아니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기회를 잡는 능력이 아니라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필요한 능력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남편의 미덕이라기보다는 마누라의 미덕이다.
둘째, 설득 능력이 영업의 핵심이라는 주장에 대해.
나는 사람을 설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은 설득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을 설득하려 하지 않고 이미 설득되어 있는 사람을 “발견”하러 다닐 뿐이다. 그것이 바로 나의 영업 기술이다.
설득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피차간에 피곤하게 만든다. 나아가 물고 늘어지는 그 모습은 추하기까지 하다. 반면 발견은 사람을 품위 있게 만든다. 한번 거절하면 젊쟎게 인사하고 되돌아선다. 붙잡고 늘어지면서 끝까지 설득하는 것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어딘가에 분명 있을 나의 고객을 어떻게 하면 쉽게 그리고 빨리 발견할 수 있을까를 연구하는데 모든 정력을 집중한다.
설득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며 발견은 남에게 이익을 주는 일이다. 설득 당한 사람은 마지못해 당신에게 적선을 베푸는 것이므로 당신에게 짜증을 내는 반면, 발견 당한 사람은 당신 덕분에 필요한 것을 얻은 사람이므로 당신에게 무척 호의적이다. 당신이 오히려 그에게 적선을 베푼 격이 된다. 따라서 가격을 에누리해 줄 필요도 없고 그외 영업에 부수하는 하등의 부작용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세일즈맨은 사람을 만나 그에게 물건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물건을 팔 수 있는 사람을 발견하러 다니는 사람이다. 그래서 영업 직원은 직원이라기 보다는 사장의 입장과 유사하다. 그래서 한번 벌 때에는 많이 번다.
대개의 영업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설득의 기술이다. 하지만 진정 가르쳐야 하는 기술은 발견의 기술이다. 하지만 그 어떤 곳에서도 이를 개념 있게 가르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나는 최근 개인적으로 3000만원 정도의 투자를 필요로 하는 사업에 대해 어떤 특수한 형태의 광고를 낸 적이 있었는데 무려 20군데가 넘는 곳에서 연락이 왔고 대개는 투자를 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그들은 “이미 설득되어 준비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너무 일이 잘 되자 나는 광고를 다시 철회해 버렸다. 좀 더 욕심을 내서 2억 정도로 액수를 높여서 다시 광고를 낼 생각으로 돌아선 것이다.)
셋째, 사업에 성공하려면 해당분야에 대해서 최고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
사업은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에 의해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사업의 성공을 결정짓는 것은 HOW가 아니라 WHERE 이다. 무엇을 어떻게 하는 법만 알아서는 사업에 성공할 수 없다. “언제 어디에서” 하느냐를 현명하게 판단할 줄 아는 자가 바로 유능한 사업가다. 정치학 박사가 아니라 줄 잘서는 놈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는 것과 같다. 연설문은 정치학을 전공한 비서에게 작성하도록 맡기면 그만이다.
해당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돈을 버는 경우를 보면 그가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라서가 아니라 그가 자신을 필요로 하는 시기적 장소적 환경을 우연히 만났기 때문이라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한 때 많은 벤쳐 기업들이 그 덕에 떼돈을 벌었다. 직업이 없어서 백수 노릇을 하고 있던 고등 실업자들이 증권사나 창투사 상담역 몇 번 하고는 수백억을 벌었다. 그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그래도 학교는 좋은데 나와서 사람 상대할 때 남들보다는 좀 교양 있어 보인다는 그 정도 밖에 없었다. 증권이 뭔지 창업이 뭔지 M&A가 뭔지 아무것도 모르고 어깨 너머로 한두 번 지켜 본 것이 그들이 가진 지식의 전부였다.
굳이 벤쳐가 아니라 굴뚝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한 분야에서 오래도록 지식과 경험을 쌓는 것이 그 세계에서의 미덕이다. 동대문 의류시장이라던가 마장동 축산물 시장에서 큰 돈을 번 사람들은 대개가 그런 미덕의 소유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성공하기 전까지는 벤쳐 시장의 전직 고등실업자들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수십년을 기다리고 있다가 어느 때 한번 기회가 오자 그 기회를 잡았을 뿐이다. 벤쳐 시장의 전직 백수들도 그 점에서는 똑 같았다. 더욱이 그들은 거의 노력도 하지 않고 기회를 잡았다.
인맥을 잘 쌓아 두어야 한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서울대 경영대 출신들은 자기 친구들이 벤쳐하고 있다는 그 이유로 자기도 따라서(묻어서) 돈을 번 것이지 무슨 경영에 관하여 지식이 대단해서 돈을 번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위치 선정 하나만으로 수백억의 돈을 벌었다. 우리 사회에서 위치 선정과 가장 관계 깊은 것은 물론 인맥이다.
열심히 노력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은 알량한 월급 밖에 없다. 큰 돈은 열심히 노력해서가 아니라 정확한 장소에 떡 버티고 서서 벌어야 한다. 무엇을 아느냐 보다는 어디에 가 있어야 하느냐를 아는 것이 큰 돈 버는 지름길이다.
노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 노력을 쏟는 방향에 관해서 말하고 있을 뿐이다. 엉뚱한데 정열을 쏟아 붓고 왜 나는 노력을 열심히 했는데 지금 이 모양인가 한탄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라는 이야기다.
넷째, 과거 벤쳐 거품 시절의 주식 투자는 마구잡이식의 묻지마 투자로서 당시에는 다들 미쳐 있었다는 주장에 대해.
눈먼 돈 없다. 그들은 다들 미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다들 지극히 영리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주가가 폭등하는 이유를 실제 경험에 입각해서 정확히 꿰뚫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시대를 초월하여 추앙받는 철학자 스피노자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누구나 한번 쯤은 들어본 이야기일 것이다.
“내일 이 세상이 멸망한다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 나무를 심겠다.”
적어도 우리나라 주식 시장 개미들은 스피노자보다는 한 차원 더 높은 사람들이다. 개미들은 이렇게 말한다.
“내일 모레 이 세상이 멸망한다 할지라도 만약 내일 사과가 열린다면 오늘 사과 나무를 심겠다.”
설령 내일 모레 주가가 폭락한다 할지라도 내일 주가가 폭등하여 그 주식을 팔아 차익을 챙길 수 있다면 오늘 그 주식을 사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주가 폭등에 가장 근본적으로 작용하는 힘이다. 아무리 그 회사의 실체가 허수라고 하더라도 하여간 내일 그 주가가 오르기만 한다면 그건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묻지마 투자였던 것이다. 물을 이유도 없다. 묻는 것이 오히려 바보짓이고 미친 짓이다. 묻지마 투자자들이 망한 이유는 묻지마 투자 행태 때문이 아니라 다만 그들 중 일부가 막차를 탓기 때문이었다. 치고 빠진 사람들은 돈을 벌었다. 돈 번 그들 역시 투자는 묻지마 투자였다.
이상과 같이 사업이라는 분야는 당해 분야에서 책임있는 입장에 서서 직접 체험해 보지 않으면 잘못 알거나 거꾸로 아는 것들이 무척 많은 그런 분야다. 경영대 교수에서부터 유명 창업학원 강사에 이르기까지 대개는 사업에 관해 아는 것이 별로 없거나 오히려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많은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학이나 일반 창업 스쿨 같은 곳을 다니면 사업에 관해 무엇을 배우기 보다는 오히려 잘못된 지식을 얻게 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진다. 그러므로 그들 강사들은 수강생들의 사업을 성공으로 이끌기 보다는 실패로 이끈다. 변호사나 회계사가 사업에 실패하는 것이 보통이고 무학으로서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는 사람들이 오히려 성공을 더 잘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배운 것이 많은 사람은 아는 것이 너무 많다. 즉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너무 많다. 대신 무학인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없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정주영 같은 사람이다. 대신 배운(잘못 배운) 것이 많은 재벌 2세들은 부모가 이룩해 놓은 사업을 말아 먹는 것이 보통이다.
내가 학원을 하나 만드려고 하는 이유는 대충 이상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대학, 그 중에서도 경영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나와도 도대체 사업에 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 복식 부기에 입각한 경리일 정도나 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건 몰라도 사업을 할 수 있다. 사장으로서 필요한 지식은 그런 것이 아니다. 나는 경리 아가씨가 사장을 하는 기업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장들이 실은 경리 아가씨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 추측이 맞다면 지금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이 신문을 읽고 있는 대부분의 샐러리맨들의 희망은 아마 큰 돈을 버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큰 돈은 월급 받아서 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승진해서 등기이사가 되어 연봉을 수십억씩 받을 수 있는 사람의 수효는 한정이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 삼성과 같은 기업이 수 만개가 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다음에야 큰 돈 벌 수 있는 방법은 사업을 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그래서 샐러리맨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사업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