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로의 방(女老의 房)/민중-권 연 수
팔 남매 낳으시고 기르시다
열두살짜리 딸자식 세상 먼저 앞세워 보내시고
가슴치며 목 놓아 우셨던 여로...
촌村 어귀에 자리잡은
파란색 칠한 쇠로 만든 대문의 새끼문을 열고
들어가 스무 발 자욱쯤 발길을 옮겨 유리창 문
두개 가운데 하나만 열면
여로의 방...
팔순을 서너해 앞둔 백발의 촌로村老...
여로의 방
큰 딸이 사 드린 원목으로 만들어
옻칠 해 놓은 무늬 새겨진
여섯단 옷장하나 뒷문쪽에 버티고 서 있다.
장롱속 옷밑 맨 아래에 가신 서방님
영정사진 감춰놓고
간간히 꺼내어 보다가 눈물을 훔치신다.
웃목에 걸린
사진틀 속의 자식들 손주 녀석들
돌아가시면 쓰신다고 미리 만들어 놓은
자신의 영정사진
어쩌다
한번씩 쳐다보시며 입가에 쓴 웃음 지으신다.
"난 시방 가도 무칠 곳 자식들 졸라서
미리 멩그라 가묘假墓 써 놔씅께 걱정 헐거시 하나도 업땅께"
할아버지 할머니 합봉하고
돌아가신 아버님곁에 가묘 만든날 너무너무 좋아 하셨다.
"품안에 자식이제... 다 필요 업써라우
요놈저놈 훌터봐도 쓸만 헌놈 어딧따요
글도 내 새낀디 어쩔꺼시요
이리도 흥 저리도 흥 이해허고 살아야제라우
새끼들이 묵고살기 오죽허먼 그러거쏘"
여로들 여로의방에 둘러 모여 앉아
푸념하신다.
자식들... 죄다 이해 하시고
홀로 쓸쓸한 여로의 방을
홀로 밤새워 지키신다.
웃목에
막내 아들이 사 드린 큼지막한 텔레비젼 한대
큰 딸이 사 드린 번호판이 큰 전화 한대
새끼들 전화번호 적힌 하얀 종이 한장
밥티로 벽에 붙여 놓으셨다.
왠만해선
전화를 안 하신다...
작은 아들이 사 드린 태평양의료기의
온열.전위치료기에 몸을 지지며
"아이고!시원헝거" 행복 해 하신다.
덩달아 ...여로따라 나도 행복 해 진다.
봄에는
온갖 씨앗들이 여로의 방을 차지한다.
여름에는
모기장하나 더 있다 사방 못에 걸수있는 고리와
끈....
"훌훌 요렇게 털고 들어 가야 혀 *모구 들어오먼 밤새 뜨낑께
나올때도 *요로코롬 히야혀 알것째"
손주녀석 들에게 주의를 주신다.
가을에는
쌀 가마니 웃방에 들여 놓고
*요놈조놈 한가마니씩 나누어 배급을 주시며
만족해 하시고 좋아 하신다
덩달아 나도 여로따라 기분이 좋다.
겨울에는
메주 덩어리
여로의 방에 들여놓고 메주를 익히신다.
메주냄새 온 방에 꽉 찬다.
그래도 아랑곳 하지 않고 좋아 하신다.
"내 새끼들 메길 거싱께 냄시나도 암시랑 안혀"하시며
겨우내내 메주냄새 맡으신다.
설날에는
여로의 방에 손주녀석들
드글드글 시끌벅쩍 쌈박질 해도
마냥 웃음 지으시며 불만 불평의 말씀 한마디 안 하신다
차라리...
입으로 뱉으시면
가슴의 응어리
풀리실 터인데...
"늙으먼 자식들이 먼 소양 있다요
내몸 내가 간수허고 몸 아프먼 내 발로 기어서 병원가야제
자식들 다 필요 업써라우"
여로의 방에서 들려온다.
마루에 걸터앉아
"그려,마땅께.자식들이 히드린 것이 머시 이써야제 앙그려"
자식은 마음에 새긴다.
새끼들에게
쌀 메주덩어리 고추장단지 고구마 들려 보내시며
"아야, 가서 꼭 전화 히라이-이"
쓴웃음 지으시고 여로의 방에 홀로 들어가신다.
쓸쓸하다 훠-엉 하다 허접이 없다.
"새끼들 올해는 운수대통 히얄 것인디..."
두손모아 무릎꿇고 잘 도착들 허게 히 도라고 기도 하다가
한숨쉬고 잠깐 주무시다가 예배당 종소리에 일어나 성경가방 메고
교회를 향하신다.
자식들을 위해 눈물흘려 기도 하시고 돌아와 여로의 방에 드셔서
눈을 잠깐 부치신다.
코를 곯며 주무신다 피곤하신 모양이다.
"나도 늙으면 저럴 것인디......"
다음날......
*여로(女老):국어 대백과 사전에도 없는 말...늙으신 어머니(여자)老母를 달리 표현 해 보고 싶은 마음에서 만들어 낸 시어詩語./민중-권 연 수만듦
*모구:모기의 전라도 사투리
*요로코롬: 요렇게의 전라도 사투리
*요놈조놈:이놈저놈의 사투리
.여로(旅路):여행길,여행하는 길(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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