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에게 들꽃이 되고 싶다고 / 유리바다 이종인
누가 나에게 들꽃이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야기만 들어도
나는 어느새 바람부는 빈 들에
차분히 서 있는 나를 보게 됩니다
실타래처럼 얽힌 상념의 세월을 털어내며
작게 흔들리는 들풀과
꽃들의 소박한 이미지에
오늘 하루 나를 맡깁니다
들려오는 것은 오직 하나
끝없는 사랑의 속삭임 뿐
여지껏 손에 쥐고 있었던 무거운 짐 내리고
내 영혼에게
내 인생에게
참 미안하다고 고백하는 순간
오래도록 아파하던 나는 사라지고
단단히 뿌리박힌
이름없는 들꽃이 되는 것을 어찌합니까
해마다 그 자리에 꽃피어 난다는
약속을 부여받는 자리에
기뻐서 온몸이 떨리는 것을 어찌합니까